
제목: 파이란
개봉: 2001.4.28
감독: 송해성
출연: 최민식, 장백지
비극의 시작
미성년자에게 불법 포르노를 팔다 경찰에게 잡혀 10일 간 구류됐다가 이제 막 출소한 강재. 같이 건달 일을 시작한 동기 용식은 보스가 되어 있지만 깡도 없고 싸움 실력도 없는 강재는 조직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후배 건달인 경수와 빈둥거리며 살고 있다. 젊은 후배들에게 괄시받고 관리하던 비디오 가게도 후배에게 물려주게 되고, 예전 어려웠던 시절 자신들에게 잘해주었던 슈퍼마켓 아주머니에게는 수금도 못 받아내고 후배들과 싸움이나 하게 된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는 강재를 두들겨 팬 용식이지만, 동기로서의 안타까운 마음에 강재와 술을 마시게 된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나오는 길에 용식은 자신의 구역에 온 라이벌 조직의 조직원을 보고 분노하여 살해하게 되고, 현장에 있던 강재는 시체유기를 돕게 된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
이후 용식은 조직 모두가 살기 위해서라며 강재에게 살인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자수해 줄 것을 요구하고, 그 댓가로 강재의 오랜 꿈인 낚싯배를 사줄 것을 약속한다. 이번 일만 치르면 낚싯배를 몰고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대신 징역을 살 것을 다짐한 강재에게 경찰이 찾아온다.
" 안 그래도 제가 가려고 했는데..." 라는 강재에게 경찰들은 뜻밖에도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이미 강재는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그는 서류상으로 기혼이었고, 그 상대는 이미 한국을 떠난 먼 친척을 찾아 중국에서 건너온 고아 여성 파이란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친척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버린 상황. 결국 연고가 없는 한국에 머무르기 위해 인력사무소의 주선으로 위장결혼을 하게 된 그녀에게 용돈벌이 삼아 사진과 서류를 내준 것이 강재였던 것이다. 위장결혼 당일 날, 인력사무소 문틈으로 첫 만남을 한 뒤론 그녀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강재이지만 자수하기 전에 바람도 쐴 겸 그녀의 시신을 인도받으러 경수와 함께 길을 나서게 된다. 처음 인력사무소에 등록한 뒤 룸살롱에 팔려갈 위기인 파이란이었지만, 룸살롱 내부의 험악한 환경을 본 파이란이 일부러 결핵 환자인 것처럼 피를 토하는 연기를 하고, 그 모습을 본 업소의 사장이 그녀를 거부하여 결국 그녀는 시골 세탁소에서 일하게 된다.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땅이지만 친절한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열심히 살아가며 그녀는 촌스러운 강재의 사진 한 장에 큰 위로를 받게 된다. 한국어를 배우며 남편 강재에 대한 그리움을 키워가던 그녀였지만 자신이 알고 보니 진짜로 결핵에 걸린 것을 알게 되고, 그래도 명색이 부부인 만큼 인사도 할 겸 도움이라도 얻을까 해서 용기를 내어 강재를 찾아간다. 하지만 강재가 있는 비디오 가게 주변을 서성이다 강재가 경찰에 체포되면서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모습만 보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와 함께 눈을 감다
화장된 유골을 찾으러 온 강재가 파이란과 함께 생활한 세탁소 할머니에게서 건네받은 파이란의 편지에는 자신을 아내로 맞아준 강재에 대한 고마움과 한 번도 못 봤지만 자신의 낯선 생활에 큰 의지가 되어준 강재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적혀 있었고,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거나 소중한 존재였던 적이 없는 강재는 그 편지를 읽으며 오열한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이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은 세상의 가장 밑바닥이고, 이제 남 대신 징역이나 살려고 하는데 처음으로 자기를 사랑해준 여자는 이미 죽어서 한 줌의 재가 되고... 파이란이 아픈 연기가 끝내준다고 한 시골 인력사무소 사장을 두들겨 팬 뒤 여행에서 돌아온 강재는 용식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고, 자수하는 것도 없었던 일로 하겠다며 주변을 정리한다. 숙소의 비디오테이프들 중에서 '파이란 봄바다'라고 적혀있는 테이프를 발견한 강재. 그 비디오는 파이란과 우연히 마주치게 된 경수가 파이란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었던 것이다. 봄바다를 배경으로 '남편에게 보여줄 테니까 노래 한 번 불러봐'라는 경수의 목소리와 함께 쑥스러운 듯이 고향인 중국의 노래를 나지막하게 부르는 파이란 모습을 바라보는 강재. 하지만 그 아련한 마음도 잠시, 강재의 목에 용식이 보낸 청부업자의 얇지만 강한 철선이 감기고, 발버둥 치는 강재의 발길에 파이란의 유골이 쏟아진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마지막으로 비디오 화면 속 파이란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강재는 숨을 거둔다.
10번은 봤던 영화
아무도, 스스로 조차도 사랑 받아 본 적 없는 남자에게 사랑하고 고맙다고 해 주는 여인의 편지가 있다. 참고로 이 영화 포스터의 문구가 '세상은 날 삼류라 하고, 이 여자는 날 사랑이라 한다'이다. 하얗고 예쁜 얼굴이라는 걸 증명사진으로만 봐서 알고, 심지어는 결핵에 걸려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자신이 깡패가 아니라도 충분히 씁쓸하고 가슴 아픈 인연이라는 것을 느끼기엔 충분하지 않은가. 연기파 배우 최민식이 주인공인데 의외의 인물인 홍콩배우 장백지가 주연으로 나와 개봉 당시 많은 관심을 받고 마니아 층을 양산하기도 했지만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작년에 개봉 20주년 기념 재개봉을 하기도 했다.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특히 많은 남자들에게 명작이라 불리는 영화. 여름이 지나고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지나 초겨울쯤이면 항상 이 영화가 생각나서 10번은 봤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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